9. 도쿄대학 구경하기
다음 날.
이 날은 하루 종일 J와 돌아다닐 예정이었는데 J를 보기 위해 우에노 쪽으로 이동했다.
JR 아사쿠사바시역 플랫폼은 동서로 길게 뻗어 있어 잘못 나가면 지하철 타려고 한참을 걸어야 됨...
지하철 아사쿠사선 아사쿠사바시역은 동쪽 출구(스미다강 방면)에 있으니 꼭 동쪽으로 나가야 된다.
평일 정오 무렵의 아사쿠사바시역은 한산한 듯 보였지만 정작 열차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그 와중에 열차를 탔는데 이쁜 치마에 하이힐을 신은 여장 아재가 문 앞에서 날 반겨줬다...
J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여장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대답이 날라왔다.
대체 일본이란...
멍청한 구글 지도가 요츠야까지 가서 난보쿠선을 타라고 그랬지만 휴-먼은 그런 수작질에 낚이지 않는다.
환승을 위해 개같이 이다바시에서 하차했다.
플랫폼에 내리니 오른쪽으로 츄오 쾌속선을 달리는 E233계가 보였다.
가운데의 이다바시역 플랫폼을 기준으로 왼쪽이 츄오 쾌속선.
오른쪽의 호수는 우시고메보리라고 불리는 작은 호수인데 여기에도 작은 도쿄의 역사가 담겨 있다.
따로 사진을 넣진 않았지만 위성 지도를 보면 에도 성이 작은 하천 같은 것으로 둘러 쌓인 것을 알 수 있다.
이걸 해자라고 부르는데 물리적으로 성을 둘러 싸 적의 침입을 막는 용도로 사용됐다.
에도 성의 경우 성을 바로 감싸는 내굴(우치보리)과 주변부의 마을을 둘러싸는 외굴(소토보리)로 구성되어 있다.
(소토보리가 죠카마치(城下町)를 감싸고 있단 소린데 한국어에 그에 대응하는 마땅한 단어가 없다...)
15세기 중반만 해도 성 바로 남쪽으로 도쿄만이 있었다고 하며 해자들이 도쿄만과 이어져 있기도 했다고 한다.
에도시대만 해도 소토보리는 수운의 통로였지만 2차대전 이후 매립되어 거의 대부분이 사라진다.
그나마 남은 게 칸다강과 연결된 이다바시~요츠야 구간인데 우시고메보리도 그 중 하나.
참고로 지금의 칸다강도 소토보리의 일부로써 기능하고 있었다고 한다.
에도 성이 있는 곳이 원래는 산지였는데 원래의 칸다강은 이 산지의 계곡을 따라 흘렀다고 한다.
하지만 17세기 센다이 번의 다이묘 다테 마사무네가 쇼군의 명을 따라 칸다강을 스미다강 쪽으로 직선화한다.
즉 지금의 칸다강은 치수가 끝난 뒤의 수로이며 지금의 니혼바시강이 옛 칸다강의 수로이다.
새로 굴착된 칸다강 하류 구간은 센다이 번의 이름을 따와 센다이호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이다바시역 서쪽 출구를 나와 우시고메바시를 따라 살짝 이동하면...
이렇게 지하철 이다바시역으로 향하는 출입구가 나온다.
저 노란 벽돌에서 나오는 올드함이 왠지 모르게 좋다고 해야 하나...
난보쿠선 플랫폼으로 내려 왔는데 놀랍게도 밀폐형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어 있었다.
난보쿠선은 일본 최초의 스크린도어 설치 노선이라고 하는데 개통 당시의 스크린도어를 그대로 쓴다는 듯.
이 날의 일정이 있던 우에노 쪽에 마침 J가 유학중인 도쿄대학이 있어 구경도 할 겸 도쿄대로 이동했다.
한국엔 대학 이름 걸어놓고도 닉값 못하는 역들이 많은데 토다이마에역은 닉값하는 거리였다.
다만 혼고지구 캠퍼스가 3개로 쪼개져 있어서 혼고 캠퍼스나 야요이 캠퍼스는 좀 걸어야 되는 거리다;;
본격적인 일정에 들어가기 전 학교 앞에서 간단히 식사를 했다.
가게 이름은 삿포로 미소라멘 미요시(札幌味噌ラーメン 三好).
왠만하면 식당 이름은 잘 기억에 안 남는 편인데 여긴 와... 미소라멘이 일품이었다.
라멘 한 그릇에 사이드로 볶음밥을 먹으니 포만감 그 자체였다.
앗... 어째서 여기 개추가...?
(대충 개추를 흔드는 아야베짤)
밥을 먹고 나서 전시회 티켓을 뽑으러 패밀리마트로 갔는데 이 자식들 발권 수수료가 있다...
패미마 내부 단말기로 콘서트 예매하고 그런 거는 봤었는데 이런 단점이 있었구나... 싶었다
배도 채웠겠다 본격적으로 캠퍼스 탐방을 시작했다.
먼저 혼고 캠퍼스의 정문으로 들어갔는데 처음엔 이게 정문인 줄 몰랐음...
여행기 쓰려고 혼고 캠퍼스 지도 찾아봤다가 알았음...
도쿄대학!! 하면 남쪽의 아카몬이 유명하다는 듯 했지만 그런 곳은 가지 않았다.
정문을 들어와 쭉 직진하면 대강당 쪽으로 갈 수 있는데 문제는 가로수로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한국 은행이나 일본 은행이나 냄새 죽이는 건 매한가지구나...를 느낄 수 있는 좋은 프롬나드였다.
혼고 캠퍼스의 또 다른 명물인 대강당. 야스다 강당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고딕 느낌의 건물이다.
야스다라니 꽤 사람 이름스러운데 일본 4대 재벌로 뽑히는 야스다 재벌의 기부로 지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곳이 유명한 것은 또 하나의 이유가 있는데 바로 60년대의 대표적 반정부 투쟁 중 하나인 도쿄대 투쟁이다.
1968년 당시 의학부 학생들의 시위와 이에 대한 경찰 출동에 따라 전학공투회의가 결성되며 투쟁이 본격화된다.
연말엔 바리케이드 봉쇄를 두고 학생들 간의 대립까지 일어나고 급기야 69년도 도쿄대 입시 중지까지 발표된다.
그러다 1969년 1월 18일 야스다 강당의 바리케이드를 철거하던 기동대가 학생들의 불타는 저항을 맞이하게 된다.
강당 내부의 수천의 학생들이 던지는 화염병이나 콘크리트 더미를 견디지 못한 기동대는 결국 후퇴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다음 날 살수차와 경찰 헬기를 동원한 기동대가 새벽부터 점령전을 시작해 결국 오후에 점령에 성공한다.
이걸 야스다 강당 사건이라고 부르는데 강당 입구의 그을음이 전부 그 때의 흔적이라고 한다.
당시 강당 내에 타 대학 지원군도 많이 있었고 이 이후로 전공투가 과격해진 양상이 있다고 하니...
일본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명물이라고도 볼 수 있을 듯 하다.
참고로 일본의 국가 등록 유형 문화재로도 선정된 역사 있는 건물이다. 오...
대강당을 보고 J의 연구실이 있는 건물을 잠깐 둘러보고 기념품샵으로 갔는데...
(사실 기념품 샵이라기보단 도쿄대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마트에 가깝지만)
<유기대부호>라는 이름의 카드게임 팩을 팔고 있길래 가서 보니 다른 수제 게임들도 진열되어 있었다.
<대부호>라는 건 일본에서 주로 하는 트럼프 카드로 하는 게임이다.
나도 자세힌 잘 모르지만 요지는 족보대로 플레이하면서 카드를 빨리 다 털고 게임에서 빠지는 것이다.
<유기대부호>는 대부호에 화학 반응을 끼얹은 게임인데 카드에 트럼프 무늬대신 다양한 물질들이 그려져 있다.
주어진 화학반응 로드맵을 따라 최대한 빨리 패(물질)를 다 소모하는 것이 목표인 게임이라고 보면 된다.
이건 <나블라 연산자 게임>인데 대학교 수학을 보다 보면 나오는 그 ∇가 맞다.
룰을 봐도 잘 모르겠던데 연산자 카드와 함수 카드 두 종류의 패를 가지고 싸우는 게임인 듯 했다.
상대방의 함수를 연산자로 공격하고 함수 카드로 내 함수를 강화하면서 상대방의 함수를 모두 없애는 것이 목표.
정말 너무 이과스러운 보드게임이 아닐 수 없다;;
참고로 <형법 포커>라는 게임도 판매 중이었는데 이건 패를 조합해 가장 형량이 큰 범죄를 만드는 게 목표라는 듯.
소개된 게임 전부 도쿄대 학생들이 고안하고 출시한 게임인데 확실히 이런 거 보니 뭔가 다르긴 하다 싶었다.
국내 대학에서 이런 학문스러운 수제 보드게임을 본 적은 없어서...
근데 더 웃긴건 여기서 판매하는 도쿄대 굿즈 중에 제일 마음에 든 것이 바로 얘네들이란 거다.
도쿄대 로고 박힌 의류도 있었는데 뭐라 해야되나... 너무 안 이쁘게 생겨서 구매욕이 별로 안 들더라...
도쿄대생들 분발합시다 굿즈에 슬픔 있어요
캠퍼스 투어를 대충 마친 뒤 캠퍼스 서쪽의 이케노하타 문을 통해서 캠퍼스를 빠져 나왔다.
바이바이 도쿄대...